▲ 28일 오전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재판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 법정으로 걸어가고 있다.

"재판할 것도 없이 독배(毒杯)를 내리면 깨끗이 마시고 이 상황을 끝내고 싶다."

28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311호 법정. 하늘색 줄무늬 환자복을 입고 재판에 나온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정치적 책임을 통감한다"며 이같이 한탄했다. 특검은 김 전 실장이 이른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만들도록 지시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이날 법원은 김 전 실장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

김 전 실장은 "제가 모시던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을 받고 구속까지 됐는데, 잘 보좌했더라면 이런 일이 있었겠느냐는 점에서 정치적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했다.

그는 특검 측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잘못 보좌했다는 것이냐"고 묻자 "과거 왕조 시대 같으면 망한 왕조(정권)에서 도승지를 했으면 사약을 받지 않겠느냐. 백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무너진 대통령을 제가 보좌했는데, 만약 특검에서 '당신 재판할 것도 없이 사약 받아라'하며 독배를 내리면 제가 깨끗이 마시고 이걸 끝내고 싶다"고 했다. 그는 특검 측이 재차 "피고인은 전혀 잘못한 바가 없고, 단지 비서실장으로 재직했기 때문에 잘못 보좌했다는 취지로 이해하면 되겠느냐"고 질문하자 "그런 취지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자신은 '블랙리스트'와 무관하며 적용된 범죄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는 "어차피 정부에서 줄 보조금이나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신청자는 많으면 누군가는 배제되고 지원금이 삭감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아니냐"며 "말단 직원들이 자기 나름의 기준을 갖고 (지원금을) 삭감한 게 과연 범죄인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 "나이 든 게 자랑은 아니지만 3~4일 전 모임에서 있었던 일도 잘 기억이 안 난다"며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언론 보도로 처음 봤다. 블랙리스트 명단이 만들어진다는 보고 받은 적도 없고, 명단을 본 일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 악화로 재판부에 보석을 청구한 상태다. 그는 변호인이 "재판부에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울먹이며 "제 소망은 언제가 됐든 옥사(獄死) 안 하고 밖에 나가서 죽었으면 하는 것"이라며 "매일이 내 생애 마지막 날이란 생각으로 생활한다"고 했다.<조선일보. 6월 29일자 보도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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